이만큼 가까이

🔖 정말 놀라운 건, 종종 내 친구들과 똑같은 얼굴의 아이들과 마주친다는 것이다. 친척도 아니고 아무도 아니다. 아무 관계도 없이 그렇게나 똑같은 얼굴로 태어난다. 누군가 이 세계에 우리와 똑같은 얼굴들을 계속 채워넣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려운 것은 그 똑같은 얼굴 뒤 거의 다르지 않을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유일하지도 않으며 소중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대체된다. 모두가 그 사실에 치를 떨면서.


🔖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주연이가 말했을 때 아무도 '왜 또?' 하고 반문하지 않았다.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우리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망가지고 고장나고 그러다 한사람씩 사라질 것을 예감했으나 이른 포기의 달콤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거워지진 않았다. 열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씩, 운이 좋으면 길게 머물 거고 아니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담담하게 치킨을 먹고 생일 파티를 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

그사이에 다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할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고 먼 도시에서 살 것이었다. 영원히 쿨한 갱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 해도 어쨌건 나는 거기 소속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친구들을 만나는 게 어째선지 편안했다.


🔖 "그래도 책은 그런 괴물들과 싸우기 위한 무기인데, 그런 책을 만드는 회사들이 더 나쁘면 안돼. 그 간극은 참을 수 없어. 이런 식으로 좋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싸우던 사람들이 다 지치고 나면, 부당한 일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순응하는 인간들만 남아 책을 만들 거야. 깃털 부풀리기나 하는 사기꾼들만 남아 책 비슷하지만 책 아닌 그런 걸 만들 거라고. 그런 책은 읽고 싶지 않아."


🔖 남자친구: 무슨 생각해?

나: 고래 고환.

남자친구: 고래도 고환이 달려 있구나. 크겠네.

나: 몸속에 있어.

남자친구: 어쩐지 본 적 없더라니.

나: 몸속에 있어서 뜨거워질까봐, 지느러미 쪽의 차가운 정맥과 이어져 있어. 식혀주는 거야.

남자친구: 신기하다. 그런데 고래 불알은 왜 생각해?

나: 머리가 뜨거워질 때 생각하면 다시 시원해져.

남자친구: 넌 이상해.

나: 이상해서 싫어?

남자친구: 싫은 거랑은 달라. 하지만 이상해.


🔖 주연: 너 워프의 원리를 알아?

나: 워프?

주연: 왜, SF에서 우주선들이 하는 거. 쓩, 하고 뛰어넘는 거 말야.

나: 몰라.

주연: 여러가지 버전의 설정이 있지만 대개는 그거 차원을 찢는 거야. 그래서 하고 나면 우주선에 탄 사람들은 성공한 워프만 기억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차원에서는 실패에서 우주선도 사람들도 산산조각 난 거지.

나: 기분이 이상하겠네.

주연: 그래도 하고 또 하고 또 해. 끔찍한 차원들을 무한히 남기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사람들은 대단해. 자기가 어느 차원에서는 찢겨 죽었다 해도 괜찮은 거야.